바람을 입는 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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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입는 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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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를 단 조끼는 새로운 발상이 아니다. 그러나 아트윈은 3년이 넘는 시간을 'VF-01' 하나에 쏟았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물건을, 굳이 처음부터 다시 만든 이유에 대하여

한여름 정오, 야외 작업 현장의 체감온도는 종종 40도를 넘어선다. 그늘 한 점 없는 콘크리트 위에서, 작업자들은 땀에 젖은 셔츠를 입은 채 정해진 일을 해낸다. 선풍기는 멀고, 에어컨은 닿지 않는 곳. 그곳에서 여름은 매년 더 길고, 더 뜨거워지고 있다.

해마다 폭염은 기록을 갈아치우고, 야외 노동자의 온열질환 소식은 여름철이면 빠짐없이 반복된다. 더위는 더 이상 견디면 지나가는 계절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건강과 안전이 걸린 문제가 됐다. 이 단순하고도 절박한 현실이, 'VF-01'이라는 한 벌의 조끼가 시작된 자리다.

이미 있는 물건을 굳이 다시 만드는 이유

선풍기를 단 옷, 이른바 '공조복(空調服)'은 새로운 발명이 아니다. 옷 안쪽에 소형 팬을 달아 바람을 순환시키고, 그 바람이 땀을 증발시키며 체온을 낮춘다. 원리 자체는 명쾌하다. 일본의 건설·물류 현장에서 먼저 자리 잡았고, 한국에도 이미 여러 제품이 들어와 있다. 말하자면, 시장에 없던 물건을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트윈은 이 익숙한 물건 앞에서 멈춰 섰다. 기존 공조복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지나치게 기능에만 쏠려 있다는 것이었다. 바람은 나온다. 그러나 정작 그 옷을 하루 종일 입고 일하는 사람에 대한 세심함은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팬을 달았으니 시원하면 됐지 않냐는 식의, 어딘가 무심한 물건들. 포켓의 위치, 무게의 배분, 입고 벗는 동작 하나하나에서 '작업복'이라기보다 '팬을 단 천'에 가까운 제품이 적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가격이었다. 좋은 제품은 비쌌다. 그리고 비싼 만큼, 정작 가장 필요한 현장에 두루 보급되지 못했다. 매일 땀 흘리는 사람의 손에 닿지 않는 기능이라면, 그 기능이 아무리 뛰어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좋은 물건이 소수의 것으로 남는 구조. 아트윈은 그 지점이 불편했다. 그래서 세운 기준은 분명했다. 좋은 품질을, 합리적인 가격에. 누구나 부담 없이 입을 수 있어야 비로소 현장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그 한 줄의 기준을 지키기 위해, VF-01은 3년이 넘는 시간을 들였다. 흔한 물건을 빠르게 따라 만드는 대신, 오래 고민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바람의 설계

VF-01의 핵심은 양쪽 허리께에 자리한 두 개의 에어팬이다. 팬은 외부 공기를 빨아들여 옷 안쪽으로 밀어 넣고, 이 바람이 몸을 타고 올라가 목과 소매로 빠져나가며 땀을 말린다. 에어컨처럼 공기를 '차갑게' 만드는 방식이 아니다. 땀의 증발을 극대화해 체감 온도를 떨어뜨리는, 우리 몸이 원래 가진 냉각 작용을 증폭시키는 원리다. 그래서 습도가 낮고 땀이 잘 마르는 환경일수록 효과는 더 분명해진다. 팬은 세 단계로 조절된다. 가장 강한 고속(High)은 분당 4400회전, 풍압 52.4CFM의 바람을 만든다. 한낮의 가장 뜨거운 시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순간을 위한 설정이다. 중속(4200rpm, 50CFM)으로 내리면 바람과 소음의 균형이 잡히고, 저속(3900rpm, 47CFM)에서는 바람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대신 오래 간다. 10000mAh 배터리를 기준으로 고속은 약 5시간, 중속은 약 6시간, 저속은 약 7시간까지 작동한다. 아침의 선선함엔 저속으로, 정오의 폭염엔 고속으로 — 하루의 리듬에 맞춰 강약을 조절하면, 한 번 충전으로 일과 전체를 함께할 수 있다. 옷 자체도 바람을 위해 설계됐다. 원단은 폴리에스터 100%에 TPU 코팅을 입혀 방풍·방수 기능을 더했다. 단순히 비를 막기 위한 코팅이 아니다. 팬이 어렵게 밀어 넣은 바람이 원단의 틈으로 새어나가지 않고, 몸을 따라 정해진 길로 흐르도록 가두는 역할을 한다. 바람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만든 바람을 허투루 흘리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수납과 디테일에서도 '작업복'의 기본을 놓지 않았다. 가슴 포켓 셋, 사이드 포켓 둘, 그리고 배터리를 안전하게 넣는 안쪽 전용 포켓까지. 현장에서 손이 자주 가는 자리마다 주머니가 놓였고, 가슴엔 볼펜꽂이가, 머리엔 햇볕을 가리는 탈착식 모자가 달렸다. 필요 없을 땐 모자를 떼어내면 평범한 조끼가 된다. 바람을 넣는 기능 하나로 끝내지 않고, 그 위에 작업복으로서 갖춰야 할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이다.

가성비라는 말의 무게

'가성비'는 흔한 말이다. 너무 흔해서, 때로는 '싼 게 비지떡'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트윈이 VF-01에서 말하는 가성비는 결이 다르다. 성능을 깎아 가격을 맞추는 일은 어렵지 않다. 팬의 출력을 낮추고, 원단의 등급을 내리고, 마감을 생략하면 된다. 그렇게 만든 싼 제품은 시장에 이미 많다. 아트윈이 택한 길은 반대였다. 지켜야 할 성능과 기본은 지키면서, 그 안에서 가격을 끌어내리는 것. 더 어렵고 더 오래 걸리는 길이다. 3년이라는 개발 기간은 화려한 신기술을 발명하느라 쓰인 시간이 아니라, '좋으면서도 합리적인' 그 균형점을 집요하게 찾는 데 쓰인 시간에 가깝다. 좋은 물건이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매일 일하는 다수의 손에 닿을 때, 비로소 현장의 여름이 바뀐다. VF-01의 가격표 뒤에는 그런 생각이 놓여 있다.

그러나, 솔직하게

VF-01은 완벽하지 않다. 그리고 아트윈은 그 점을 숨기지 않는다. 먼저 소음이 있다. 팬이 돌아가는 이상, 소리는 피할 수 없다. 고속에서는 61데시벨, 저속에서도 55데시벨의 작동음이 따라온다. 조용한 실내라면 분명 인지되는 수준이고, 예민한 사람에게는 처음 며칠간 거슬릴 수도 있다. 다만 이 제품이 향하는 곳은 애초에 장비 소리와 차량 소음이 끊이지 않는 야외 현장이다. 그 환경에서 팬의 소리는 배경에 묻히고, 바람이 주는 이득이 소리의 불편을 넘어선다. 정 거슬린다면 속도를 한 단계 낮추는 것만으로도 소음은 줄어든다. 무게도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 팬 하나가 94그램, 여기에 배터리가 더해진다. 옷을 입었을 때 허리께에서 그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이것은 선풍기와 배터리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 구조가 가진,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중요한 건 아트윈이 이 한계를 대하는 방식이다. 소음과 무게를 없애겠다며 팬의 성능을 깎아내리는 손쉬운 길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을 택하는 순간, 정작 이 옷의 존재 이유인 '시원함'이 사라진다. 아트윈은 성능을 살리면서 그 안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쪽을 택했다. 견딜 만한 무게와 소리로, 그러나 시원함은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앞서 말한 3년이라는 개발 기간의 상당 부분이, 바로 이 줄다리기에 쓰였다. 완벽을 약속하는 대신, 한계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찾는 것 — 어쩌면 그것이 더 믿을 만한 태도다.

결국, 입는 사람의 것

기술의 관점에서 보면 VF-01은 팬과 배터리와 원단의 조합이다. 회전수와 풍압과 데시벨로 이루어진 사양표 한 장으로 요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옷의 진짜 평가는 그 표가 아니라, 한여름 현장에서 이것을 입고 하루를 끝낸 사람의 등에서 내려진다. 땀이 덜 차고, 덜 지치고, 그래서 내일 다시 입고 싶어지는가. 결국 그 질문 하나로 수렴한다. 거창한 혁신을 내세우는 제품은 아니다. VF-01은 이미 세상에 있던 물건을, 입는 사람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며 다시 만든 결과물이다. 누구나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기본은 양보하지 않도록. 화려함보다 매일의 기본을 지키는 일 — 아트윈이 'Basic Standard'라 부르는 태도는, 이 한 벌의 여름 조끼 안에도 조용히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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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F-01 에어팬 조끼

WORDS & PHOTOGRAPHY BY WOO JIN JANG
PRODUCED BY FIFTY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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